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한국협상학회 초대회장
[전문가에게 묻다, 두번째] 마음을 열면 해법이 있다
협상학의 대가인 하버드대의 (고) 로저 피셔(Roger Fisher) 교수와 윌리엄 유리(William Ury) 교수가 공저로 쓴 《예스로 가는 길(Getting to Yes)》(1981)을 보면, 협상 당사자들이 해법을 찾기 위해 긍정적인 마음으로 여러 가지 길을 모색할 때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협상에 임하면서 상대방을 ‘강적(强敵)’이라는 선입견 하에 투쟁의 상대로 보고 협상장에 나오는 경우와, 상대방도 나와 마찬가지로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동병상련의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믿음을 갖고 나오는 경우 사이에는 천양(天壤)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필자가 동반성장위원장으로 있었을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에 SPC라는 대기업이 있는데, 제과업을 아주 크게 운영하는 기업이다. ‘파리바게뜨’가 그 회사의 대표적인 브랜드이다. 당시 국내시장 점유율이 30%를 넘는 아주 막강한 기업이었다. 그런데 이 대기업의 영업 목표는 품질 좋은 제품을 싼값에 선진형 제품으로 만들어 전국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영 방침이 중소기업들에게는 엄청난 위협이 되었다. 이 대기업이 매출을 높이기 위해 거의 무차별적으로 직영 점포 수를 늘려나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수십 년 동안 생계를 의탁하며 운영하던 동네 빵집들이 거의 문을 닫을 위기에 봉착했다. 이러한 중소형 제과점들의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이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비화할 정도로 커졌다. 당시 이들을 대표하는 대한제과협회라는 단체가 있었다. 이 단체의 회장단이 동반성장위원회를 찾아와 SPC의 확장 추세를 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동반성장위원회 측에서 이를 잘 검토해 보니, 정부가 나서서 강제로 저지할 사항이 아니라 충분히 협상을 통해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위원회 측에서 양측을 만나 확인한 바에 따르면, SPC 측이나 대한제과협회 측 모두 상대방의 입장과 의중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합리적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위원회의 권유에 의해 양측은 수차례 협상 단계를 거쳤다. 호혜적 분위기 속에서 협상이 잘 진행되었고, 하나의 절충안이 제시되었다. 바로 SPC 측이 점포 수를 늘리되, ‘역세권 500m 이내’이면서 ‘기존 동네 빵집이 없는 곳’에만 점포를 개설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이었다. 역세권 500m 이내는 땅값과 임대료가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에 어차피 중소형 빵집은 들어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취지였다. 이 안에 대해 양측이 어느 정도 접근하는 듯했으나, 이내 SPC 최고 경영진 측에서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이렇게 인위적으로 성장의 길을 막을 수 있느냐, 한국이 자유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인데 이러한 규제가 과연 원리에 맞느냐는 항변이었다.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였다.
이 시점에서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재자로 나서기로 하였다. 필자는 SPC 최고 경영진을 직접 만나, SPC의 성장세를 국내에만 국한하지 말고 해외에 점포를 개설하는 방식으로 제과 사업의 ‘국제화’를 시도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이를 위해 정부 기관인 코트라(KOTRA)가 적극 협력하도록 하겠다는 일종의 동기부여도 시도하였다. 한국 브랜드의 해외 진출이라는 명분이 있고, 국내 중소기업들에게 기회를 양보하면서 SPC는 이른바 ‘K-푸드 밸류(K-Wave)’의 선두 주자라는 명성(名聲)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위원회와 SPC 간의 긴 대화 끝에 이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 즉, 협상이 타결된 것이다.
이러한 성공적 협상의 결과로 SPC(파리바게뜨)는 현재 미국, 중국, 베트남뿐만 아니라 프랑스 파리 시내에까지 진출하여 성업 중이다. 국내에서 목표로 했던 성장률을 훨씬 뛰어넘는 눈부신 성과를 가져온 것이다. 중소 제과점들 역시 SPC가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자 안심하고 생업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례에서 우리는 세 가지 중요한 협상의 성공 요건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협상에 나오는 당사자들이 마음을 열고 진정으로 해법을 찾겠다는 열의가 있었다는 것. 둘째, 합의가 안 될 경우 사회적으로 양측 모두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외부적 압력이 존재했다는 것. 그리고 셋째는 윈윈(Win-Win)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준 중재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 갈등은 늘 존재한다. 그러나 열린 마음으로 서로에게 다가가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한 해법은 반드시 있다. 이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서로 노력할 때, 우리는 이 아름다운 행위를 바로 ‘협상’이라 부른다.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한국협상학회 초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