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은진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한국협상학회 회원
[전문가에게 묻다, 번째] 청소년기의 갈등은 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잘 다루면 관계를 더 깊게 만들고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학교와 일상 속에서 다양한 갈등을 경험합니다. 친구와의 오해, 단체 채팅방에서의 말다툼, 조별과제에서의 역할 분담 문제, 가족과의 생활 방식 차이까지 갈등은 매우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그런데 많은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더 커지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는 갈등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누가 맞는지’를 먼저 따지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대화는 경쟁이 되고, 상대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사라집니다.
예를 들어, 조별과제를 하는 상황을 떠올려봅시다. 발표를 앞두고 한 친구가 맡은 부분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흔히 “너 왜 이것도 안 했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사실을 확인하는 질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난으로 들립니다. 상대방은 “나도 바빴거든?” 혹은 “나만 안 한 것도 아니잖아”라고 반응하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고, 결국 문제 해결은커녕 감정만 상하게 됩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접근을 조금만 바꾸면 결과는 달라집니다. “이번에 맡은 부분 준비하기 어려웠던 상황이 있었어?”라고 물으면, 상대는 공격받는 느낌보다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면 변명이 아니라 상황을 설명하게 되고, “시험 기간이랑 겹쳐서 시간이 부족했어” 혹은 “자료를 찾는 게 어려웠어”와 같은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 순간부터 갈등은 싸움이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뀝니다.
이처럼 갈등관리의 핵심은 상대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질문을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건 네가 잘못했어” 혹은 “나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처럼 자신의 입장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입장은 쉽게 부딪히고 잘 바뀌지 않습니다. 반면 그 뒤에 있는 이유, 즉 시간이 부족했는지, 이해가 어려웠는지, 혹은 감정적으로 힘들었는지를 알게 되면 해결 방법은 훨씬 다양해집니다. 예를 들어, 단체 채팅방에서 한 친구의 말에 기분이 상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런 말을 해?”라고 따지면 상대는 “장난이었어”라고 방어하지만, “그 말 듣고 좀 속상했는데, 그런 의도였어?”라고 물으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오해를 풀 수 있는 대화로 이어집니다.
또 다른 상황을 생각해봅시다. 친구가 약속 시간에 자주 늦는다면 우리는 “너는 왜 항상 늦어?”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에는 이미 판단이 담겨 있습니다. 대신 “오늘 20분 늦었는데, 혹시 요즘 시간 맞추기 어려운 일이 있어?”라고 물으면 상황을 이해하는 대화가 시작됩니다. 상대가 “요즘 학원 끝나는 시간이 계속 밀려서 그래”라고 말한다면, “그럼 약속 시간을 조금 늦추거나 장소를 바꿔볼까?”처럼 함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갈등관리의 핵심입니다.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조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관리된 갈등은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서로 다른 생각이 부딪히는 과정에서 더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더 현실적인 해결책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없느냐가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감정적으로 반응하면 관계는 멀어지고, 이해하려는 질문으로 시작하면 관계는 더 깊어집니다. 우리는 흔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 협상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잘 묻는 능력’입니다. 갈등 상황에서 상대를 이기려는 말은 대화를 막고, 이해하려는 질문은 대화를 엽니다. 다음에 갈등이 생기면 이렇게 시작해보세요. “왜 그랬어?” 대신 “어떤 상황이었어?”라고. 이 작은 질문 하나가 싸움을 대화로 바꾸고, 관계를 지키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정은진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연구위원·한국협상학회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