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교육청 대변인실 남상백
「어린이 놀이헌장」 선포, 그리고 1년
작년 5월 4일, 전국시도교육갑협의회 명의의 「어린이 놀이헌장」이 제정·선포되었다. 한국의 어린이들이 과도한 학습 강요 환경에 노출되어 자연스런 심신의 성장을 도모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높았던 터라 많은 언론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학교 현장과 아이들의 삶에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남는다. 아마 교육계에서조차 헌장이 만들어진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이유는 없다. 「어린이 놀이헌장」 제정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을 뿐이니까.
되새겨보는 질문 - 놀이는 과연 권리일까?
‘어린이에게는 놀 권리가 있다.’ - 「어린이 놀이헌장」 제1항의 내용이다.
지혜로운 어른들이 이미 충분히 알고 있듯이 어린이들에게 놀이란, ‘삶’ 그 자체에 가까운 것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연스레 관계를 형성하고 인지능력을 습득한다. 놀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인간으로 태어나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양보할 수 없는 것 ? 이 정도면 ‘권리’라고 부를 만하지 않을까?
그러나 필자가 헌장 제정과 그 후속 사업 과정에서 새삼 느낀 것은, 학교 현장의 선생님이나 학부모들에게 공히, 이 ‘놀 권리’에 대한 인식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많은 어른들 마음 속에 ‘놀이’란, 치열하게 공부하고 잠시 숨통을 열어주는 휴식 수단 정도일 뿐이다. 이 또한 어른들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위해 유보되기 일쑤다. 아이들이 놀 시간과, 놀 공간, 함께 놀 친구를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적 배려는 턱 없이 부족하다.
이처럼 취약한 ‘놀 권리’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은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힘들어도, 우리 모두 삶의 곳곳에서 그 심각성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부모들은 아이 키우기 힘들다고, 선생님들은 힘겹다 못해 정신이 아픈 아이들 때문에 곳곳에서 아우성이니까.
아이들은 ‘학교에서’ 놀고 싶다!
여러 아동권리 단체와 학부모 단체 대상의 의견 수렴 과정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 중에 하나는, 어쨌든 아이들은 학교에서(!) 놀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회적인 돌봄 시스템은 취약하고 많은 아이들이 방과후에 보육형 학원 뺑뺑이를 도는 우리 현실에서, 함께 놀 친구와 공간을 가장 저비용으로 확보해줄 수 있는 곳은 바로 학교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까? 정규 교육과정 안에서 아침 해맞이 시간과 중간 휴식시간을 충분히 보장하는 여러 혁신학교의 사례가 참고가 될 만했다. 강원도교육청은 각 학교의 교육과정 만들기 주간에 ‘충분한 놀이시간 확보‘를 권고하는 지침과 캠페인 자료 등을 제작해 학교와 공유했다. 전북교육청의 경우 학교가 아이들에게 최소한 놀이 시간 60분을 보장해주자는 취지의 <놀이밥 60+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방과후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충분히 놀 수 있도록 배려해 주자는 아이디어는 ‘아이들의 안전’과 이를 지켜볼 수 있는 ‘인력’ 문제에 종종 부딪힌다. 방과 후에 학교에서 놀다가 다칠 경우 책임 문제가 민감하게 대두될까봐 학교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방과후 놀이를 지켜봐주는 자율 동아리 ? <와글와글 놀이터> 등이 영감을 주는 모델로 거론됐다. 강원도교육청의 경우, <학부모 놀이 지원단>을 만들어 돌봄교실 교육기부로 연결해주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 밖에도 놀이조차 무언가 가르쳐야 하는 학습 요소로 생각하는 어른들의 인식 개선 문제, 학교 시설과 공간을 놀이 친화적으로 구성하는 문제 등도 교육청이 아이들의 ‘놀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고민하는 주제들이다.
다만 이러한 각각의 주제들에 대해 의미 있는 모범사례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를 성급하게 표준화하려고 들면 또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기에 충분한 설득과 합의의 과정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앞서 말한 시간 확보이든, 안전 문제든, ‘놀 권리’를 잃어버린 우리 아이들에 대한 측은지심, 그리고 이에 기반한 각 학교 교육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의지가 선결되지 않으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5월의 이벤트를 넘어 학교의 변화를
그렇다. 근본적으로는 사람의 마음이, 구체적으로는 학교 관리자, 교사, 학부모의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만 기다렸다가는 아무 성과도 못 얻기 십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금까지는 「어린이 놀이헌장」이라는 소나기를 일단 각 시도교육청에 뿌리고 이후에 삐죽이 흙을 뚫고 나오는 변화의 새싹들을 관찰하는 단계가 아니었을까 한다. 지금부터는 구체적인 변화의 흐름을 만들 때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보수라는 세간의 구별 짓기를 넘어 전국의 교육감들의 마음이 모였다는 것은 큰 자산이다. 올해도 이를 발판 삼아 한발 더 내딛는다.
우선, 4~5월에 걸쳐 「어린이 놀이헌장」 선포 1주년 기념 사업 ? 교육 포럼, 학교장 원탁회의, 어린이 놀이 한마당 사업을 추진한다. 다시 한 번 전국 시도교육감들의 의지를 확인하고, ‘놀 권리를 지켜주는 학교의 모습’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교육청과 학교 구성원, 아동권리 단체들의 합의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다.
더불어 5월 이후에는 정부 부처와 각 시도교육청이 함께 고민을 나누고, 공동 정책을 다듬어 나가고자 한다. 교육과정과 돌봄교실 운영 정책, 교원·학부모 연수 등에 관련된 구체적인 모범사례들이 수집되고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학교 현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교사와 학부모가 스스로 변화를 기획할 수 있도록 하는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다. 교육기관과 아동권리 단체가 함께 하는 캠페인, ‘(가칭)어린이 놀 권리 지킴이 학교’의 기준과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것도 아이디어로 검토되고 있다.
「어린이 놀이헌장」은 끝이 아닌 시작
물론 우리도 안다. 흔히 ‘학력주의’로 일컬어지는 한국 사회의 고질병과 그로 인한 경쟁 때문에 어른들 마음 속에 자리 잡은 뿌리 깊은 불안감을. 이것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척박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다. 그렇다고 본질적인 변화만 주장하고 기다리기에는 아이들의 삶이 녹록치 않다. 지금의 조건에서라도 교육청과 학교가 먼저 나서야 한다.
아이가 신나게 노는 모습을 마음에 담아두었던 어른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것이 있다. 충분히 놀고 난 아이들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롱함’이 느껴진다고. 무슨 거창한 교육 이론도 필요 없다. 그것이 아이를 키우는 기쁨이고, 아이의 본질적 성장 과정이다. 교육계에는 해마다 수많은 사업이 넘쳐나고, 미래를 대비한다며 교육과정 개편도 잦지만, 이 모든 노력이 아이를 키우는 본질에 얼마나 천착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어린이 놀이헌장」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화두(話頭)이다. 그 안에 담았던 절실한 마음이 교육계 전반의 흐름으로 확장되길, 그래서 아이들의 맑은 웃음을 되찾아주는 시금석이 될 수 있길 소망한다.